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잭슨/경력 (문단 편집) == 2001년~2002년: [[Invincible]]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33.media.tumblr.com/tumblr_mkaw4mliDQ1qzzvs2o2_r1_500.gif|width=100%]]}}} || 2001년 세상에 공개된 이 작품은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정규앨범'''으로, 앨범 제작에만 3,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으며, [[Bad]] 이후부터 이어진 마이클 잭슨의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주 장르는 [[R&B]], 팝, [[소울 음악]]이고 사랑, 외로움, 미디어 비판, [[사회 운동|사회적 문제]] 등을 다룬다. 1995년 발매된 [[HIStory]]를 마지막으로, 6년간 마이클 잭슨은 새로운 정규앨범을 발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앨범 발매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모든 언론은 이 앨범을 "[[마이클 잭슨]]의 복귀작"으로 보도했다. 앨범 제작 과정에서 잭슨은 총 16곡의 수록곡 중 15곡의 작곡에 참여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앨범이 [[발라드]] 성향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소니 뮤직은 [[밀레니엄]] 첫 번째 [[크리스마스]] 시즌에 앨범을 발표시키기 위해 마이클 잭슨을 재촉했으나, 완벽을 기하는 그는 여전히 녹음실에 머물렀다. 제작비 3,000만 달러를 투자한 제작사의 조바심은 결국 마이클 잭슨과 소니의 사장 토미 모톨라 간의 불화로 이어졌다. 소니는 손익분기점인 7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에 도달하지 못하면 마이클 잭슨이 제작비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조건을 강압적으로 내세웠고, 이에 잭슨은 이 앨범이 소니 뮤직에서의 마지막 작업이 될 것이라고 대응하면서 맞부딪혔다. 발매 직후, [[Invincible]]은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이외의 10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단 세 곡만 싱글컷 되었는데 이 또한 소니 뮤직과의 갈등으로 초래된 결과이다. 첫 번째 싱글 "You Rock My World"는 빌보드 hot 100에서 10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마이클 잭슨의 생전 마지막 빌보드 top 10곡이었다. 이 곡은 평론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으나 "앨범의 리드 싱글로는 적합하지 않다."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즉, [[마이클 잭슨]] 수준의 아티스트라면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업적으로는 큰 홍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싱글차트 2위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유럽차트 최상위권을 석권했다. 두 번째 싱글 "Cry"는 영국 싱글차트 25위를 기록했고, 마지막 싱글 "Butterflies"는 평론가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빌보드 싱글차트 14위를 기록했다. 앨범은 총 600만 장 정도가 팔려 성인 이후 마이클 잭슨이 발매한 정규앨범 중 최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다만 [[Invincible]]은 '''2001년 발매된 앨범 중 네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었기에 "비운의 작품"이라는 말은 오직 마이클 잭슨에게만 허용되는 표현이었다. 의 발매 직전 2001년 9월 7일부터 9월 10일까지 뉴욕 매디슨 광장에서 30주년 솔로 기념 콘서트를 개최했는데, 마이클 잭슨의 커리어 30년을 그대로 녹여냈다는 평을 얻으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등의 팝스타들이 게스트로 참석한 것은 물론 마이클 잭슨의 퀄리티 높은 무대와 이에 호응하는 팬들의 호흡, 여러가지가 최상급으로 겹쳐져 현재까지도 마이클 잭슨의 최고의 라이브 무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앨범 제작 과정에서 마이클 잭슨과 소니뮤직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며 위기가 찾아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 된 잭슨과 [[소니 뮤직]]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를 바탕으로 [[Invincible]]의 월드 투어는 진행되지 않았으며 소니 뮤직의 토미 모톨라는 일방적으로 앨범 홍보를 중단시킨다. 마이클 잭슨은 앨범의 흥행 실패를 소니 뮤직의 의도적인 홍보와 마케팅 축소에 원인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2002년 7월 성명문을 통해 이를 지시한 사장 토미 모톨라를 "악마",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결국 잭슨과 대립했던 토미 모톨라는 해임되었다. 앨범을 위해 100여곡의 후보곡을 준비했다는 뒷이야기와 수록곡 "Butterflies"의 완결을 위해 200번 이상의 녹음을 시도했다는 사례는 그가 이 앨범에 쏟았던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짐작케 한다. 강렬한 기타 솔로를 덧입힌 "Privacy"에서 그는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파파라치]]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고, [[인더스트리얼]] 록과 힙합을 배합한 "2000watts"에서는 역동적인 보컬 에너지를 쏟아냈다. 는 2002년 빌보드 연간 HOT 100 차트 64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이 곡은 마이클 잭슨 생전 HOT 100 연간차트에 든 마지막 곡이 되었다. 베이비페이스의 달달한 [[R&B]] 스타일을 잘 소화해낸 "You Are My Life"와 어린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호소하는 "The Lost Children"은 마이클 잭슨 특유의 미성과 부드러움을 빛내주는 곡이다. 절친한 동료인 배우 [[크리스 터커]]와의 대화로 시작되는 "You Rock My World"에서는 짜임새있는 구성과 열정적인 가창이 돋보인다.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와 흥겹게 어울린 [[라틴]]스타일의 "Whatever Happens"도 앨범의 다채로운 면면을 채우며 감상의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평론가들에게는 다양한 평가를 받았는데, 데이비드 브라운은 "[[Invincible]]은 '''새로운 모습이 없는 마이클 잭슨의 첫 번째 앨범'''"이라고 평가했으며 앨범에 큰 히트곡이 없는 것 또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롤링 스톤]]의 제임스 헌터는 '''[[발라드]]가 이 앨범을 지나치게 지루하게 만든다'''고 말했고, 로버트 크리스트고 또한 지루하다고 묘사했다. Q 매거진은 "일관성은 없지만 흥미로운 앨범"이라는 평가를 내놓았고, 니키 트렌터는 "일부 파격적인 곡들이 포함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긍정적인 평가가 더해졌는데, "''''You Rock My World'의 성공은 잭슨의 상징적인 스타일과 음악성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실행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라고 평가됨과 동시에 "[[팝의 황제]]로부터 [[Invincible]]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신선하고 독창적이며 '''[[대중음악]]의 무조건적인 성공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나단 해리스는 "완벽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내놓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은 이듬 해인 2002년까지 각종 시상식과 콘서트,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행사를 누비며 활발히 활동했다. 2002년 4월 24일 뉴욕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콘서트를 개최했는데, 마이클 잭슨의 공연 중 공식 라이브 영상이 제작되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례로 뽑힌다. 6월에는 [[런던]]을 직접 방문해 공연하고 런던의 2층 버스에서 자신과 분쟁 관계에 있었던 [[소니뮤직]]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내보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8월 열린 2002 MTV 뮤직비디오 어워즈가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과 겹쳤는데, '''시상식 중 그의 생일을 축하하며 직접 순서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은 이 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소개로 직접 무대에 등장했는데, 브리트니가 그에게 밀레니엄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며 소개해서 잭슨은 실제 상을 받는 줄 알고 기대하고 왔으나 알고 보니 브리트니의 장난(...) MTV 측에서는 실제 그런 상은 없다고 일축했다. 이 후 가을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11월에는 [[베를린]]에 방문, 자선행사에 참석하여 연설하고 공연하기도 했다.[* 이 때도 [[앙드레 김]]의 옷을 입고 갔다.] 이 때 자신의 셋째 아들을 호텔 발코니에서 팬들에게 보여주려다 발코니 밖으로 아들을 들고 내밀었고, 이로 인해 아동학대라는 비판이 일어 잭슨은 "끔찍한 실수였다" 라며 사과했다. 2002년 미국 중간 선거에서는 [[민주당(미국)|민주당]]을 전격 지지해 화제를 모았다. 앞서 가진 공연 역시 [[빌 클린턴]]의 미국 중간 선거 지원을 위해 개최한 것이었고, 알 샤프턴 목사 등과 함께 민주당 지지 호소를 했다. 마이클 잭슨이 데뷔 이래 정치적 활동에 참여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003년 11월 22일 싱글 를 발매했는데 '''이는 잭슨 생전 마지막으로 발매한 곡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